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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Reading&Thinking

오늘의 철학:<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by zoost 2023.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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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철학은 느린 철학이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57 페이지

 

 

우리는 속도를 줄이는 데서 오는 인지적 혜택을 이미 알고 있다.

뭔가가 우리를 막고 생각하게 만들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를 멈춰 세웠다"라고 말한다.

멈춤은 실수나 결함이 아니다.

멈춤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상황이다.

생각의 씨앗이다.

모든 멈춤은 인식의 가능성, 그리고 궁금해할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다.

 

소크라테스는 정원사였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67 페이지

 

소크라테스의 목적은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혀 일종의 지적 광합성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당혹스러움을 심고 그것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을 귀찮게 한 데에는 좋은 뜻이 있었다.

바로 더 선명한 시야를 위해서였다. 소크라테스는 검안사였다.

 

“왜 성공하고 싶어?”나 “얼마나 성공해야 충분한 건데?” 라고 물어볼 수도 있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71 페이지

 

왜 성공하고 싶으냐고? 그냥. 다들 그렇지 않나?

얼마나 성공해야 충분하냐고? 지금 나보다 더.

 

하지만 제니퍼는 내게 그렇게 묻지 않았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제니퍼가 말했다.

“성공임 어떤 모습이냐고?” 내가 말했다.

“그래, 성공은 어떤 모습이야?”

성공은 어떤 모습이냐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늘 성공을 미적 측면이 아닌 양적 측면으로만 여겼다.

제니퍼의 질문에는 개인적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다.

성공은 나한테 어떤 모습이지? 그 모습을 본다면 내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소설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야기가 끝을 향할수록 새로운 관점이 두려움을 밀어낸다.

“사람들은 가끔 기차 안에서 경험하듯이,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뒤쪽으로 달리고 있고,

그러다 갑자기 진짜 방향을 깨닫게 된”것이다.

제니퍼와의 대화를 돌아보며 이반처럼 나 역시 불현듯 나의 진짜 방향을 직감했음을 깨닫는다.

 

이제 나는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잠시 멈추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성공은 어떤 모습이지?

아직 질문의 답을 찾지 못했고, 영원히 못 찾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나는 안경의 도수를 다시 맞추었고, 이제 앞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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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경험하는 것 질문을 받았을 때, 마음속에서 당혹스러움이 일어나는 것.

질문에 대한 답에 또 질문을 하고 그 대답에 또 질문을 하며 파고들 때,

귀찮음을 느끼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것을 잠시 유예하는 것.

 

 이번 주에 오빠와 ‘성공’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책에서 성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다니 소름 돋는다. 어제도 알고리즘에 대한 두려움, 진짜 온 우주는 연결되어 있는가라고 생각할 만한 일들이 있었다.

 어쨌든 우리가 얘기한 성공은 제니퍼가 하지 않은 일반적인(?) 질문과 답이었다. 나는 오빠에게 “어느 정도가 성공한 거야?”라고 물으며 “나는 쿠바에서 만났던 대기업 임원 중년부부처럼 사는 거야. 오빠랑 시간, 돈 제약 없이 해외여행 가서 있고 싶은 만큼,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올 수 있으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라고 했다. “그건 성공을 이루고 난 후에 하고 싶은 거지 성공했다는 기준은 아니지 않아?”라는 오빠 말에 머리가 띵했다. 항상 오빠한테 오빠가 생각하는 성공은 뭐야? 그래서 어느 정도를 이루고 싶은 건데?라며 오빠의 성공 기준을 판단하려 했다. 오히려 내가 허황된 꿈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느 정도 성공해야 해외여행 다니면서 살 수 있지?’ 처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먼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다. ‘미래는 무슨.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인데’라고 생각한다. 당장 앞에 놓인 2~3개월에 발생할 이벤트에 대한 계획과 이번 해는 어떻게 살지에 대한 1년 계획만 세운다. 반면에 오빠는 미래에 대한 계획이 있다. 5년 내에는 월 천만 원 고정수입을 이루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3년 내에는 이걸 이루고, 2년 내에는 저걸 이뤄야 한다. 오빠는 미래의 목표에서부터, 나는 바로 앞날의 계획부터 생각하고 움직인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지만 나는 내비게이션을 키지 않은 채 국도를 타고 간다. 필요한게 있으면 사러 마트에도 들리고, 신호도 받는다. 오빠는 고속도로를 타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린다.

 같은 목적지 즉, 같은 성공의 기준을 세웠다. 같은 목적지라도 한 사람만 도착하고 다른 사람은 가다가 길을 잃으면 의미가 없다. 나는 내비게이션을 켜고 성공의 기준이라는 목적지를 입력했다. [5년 이내에 월 천만 원 고정수입 이루기.(나는 월 천오백으로 하고 싶다.)] 나는 여전히 국도를 탈 것이고 오빠는 고속도로를 타겠지만 결국 같은 목적지에 이를 것이다. 우리는 성공의 양적 측면에 대해서만 생각하지만, 우리의 대화와 생각을 통해 우리는 진짜 방향을 깨닫게 되었다. 서로에게 질문을 하고 생각하고 눈을 비볐다. 이제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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